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바르카 (문단 편집) === 정치 === 한니발의 [[정치]]적 능력은 마냥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의 군사적 역량에 비하면 확실히 뒤떨어졌다. 일단, 그의 [[관료]]나 통치자로서의 행정 역량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행정 역량에 비해 갈등을 중재하고 [[권모술수|술수]]를 부리는 정치적 감각은 부족했다. 한니발은 우수한 통치 역량으로 '''전후 수습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 한니발은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의 집정관 두 명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사실상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오랜 전쟁으로 국고를 소진했고 부의 원천이었던 해상 무역도 금지당한 데다 자원 수급지였던 해외 식민지도 모두 로마에 빼앗겼다. 그런 상황에서 카르타고는 로마에 1만 탈란트의 [[전쟁배상금]]까지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한니발은 세금 누수를 최소화하고 재정을 [[개혁]]하여 로마의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배상금을 갚았다. 이는 카르타고가 [[전성기]] 시절에도 [[용병]]들의 보수를 체불해서 반란이 일어났던 것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후에 로마가 망할 때처럼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본인들의 주머니만 챙긴 카르타고 지배층의 이기심 때문에 일어났던 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당시 카르타고가 명목 자산만 많고 실질적으로 융통할 수 있었던 현금은 적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니발의 정치적 감각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니발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정치 경험 없이 야전 지휘관으로 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행정적 역량은 탁월했지만, 일처리 방식은 군대 지휘와 비슷했다. 그는 독단적인 상명하달을 했고, 부작용은 뒷전으로 한 채 목표만을 최우선시했다. 특히 그는 다양한 정치적 갈등을 중재하거나 상대와 타협하는 데 미숙했다. 즉, [[관료]]로서는 몰라도 현실 [[정치인]]으로서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그의 라이벌이었던 스키피오와도 비슷한 점이었다. 한니발은 독선적인 통치로 인해 자국 원로원으로부터 점점 반감을 샀다. 끝내 한니발은 나라에서 쫓겨나다시피 도망쳐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